협동조합 이장 / 고산퍼머컬처대학 교장 임경수
1.
생태전환의 개념
일반적으로 생태전환을 ‘사람이 자연을 소모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지속 가능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라이프스타일, 제도, 정책 등 다양한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정의는 생태전환을 시민운동, 실천운동에 매몰할 우려가 있다. 즉 생태전환은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거나 에너지원을 전환하는 정책적 과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소모와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해 온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자연과 공생하는 방향으로 문명의 기준 자체를 전환하는 과정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생태전환이란 삶의 가치 기준을 성장 중심에서 생태적 지속 가능성으로 전환하고, 그 가치에 맞추어 사회·경제·기술·정치의 기반을 다시 설계함으로써 인류 문명의 중심축을 이동시키는 문명사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참고적으로 인류사의 문명기반은 아래와 같이 변화해왔다.
<참고 1> 인류사의 문명의 기반
시기 | 문명의 기반 | 자연과의 관계 | 비고 | |
인류의 탄생~농경의 시작 | 생물적 본능 | 자연에 의지 | ||
농경의 시작~산업혁명 | 농사 | 자연을 활용 | ||
산업혁명~현재 (인류세) | 화석연료 | 자연을 통제 | ||
생태전환이후 | ? | 자연과 공생 |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자연과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다. 생물적 본능에 의존하던 시기를 지나 농경을 통해 자연을 활용하였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자연을 통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생태전환은 이 흐름을 넘어 자연과 공생하는 새로운 문명 단계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즉, 생태전환은 지구의 환경 문제, 에너지 문제를 넘어 문명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고 인류의 경제·사회·문화·정치 등의 다양한 문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하려는 문명사적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농업과 윤리적인 토지이용을 중심으로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천전략과 디자인 방법을 제공하는 퍼머컬처(Permaculture)는 아래와 같이 산업문명과 지속 가능한 문명을 비교한 바 있다.
<참고 2> 퍼머컬처에서의 산업문화와 지속 가능한 문화의 비교
2.
전환 담론의 개념과 한계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기존의 환경운동, 생태운동만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전환’과 관련된 다양한 담론이 이야기되고 있는데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려야 하는 것을 ‘에너지전환’, 기후변화를 기술적, 정책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녹색전환’이라 부르면서 에너지전환, 녹색전환, 생태전환을 혼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참고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 녹색전환, 녹색국가의 개념과 차이와 한계를 정리하면 <참고 3>과 같다.
또한, 지속 가능발전, 녹색전환, SDGs, 탈성장, 도넛경제, 순환경제 등 다양한 전환 담론이 존재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여전히 국가와 시장, 정책과 산업을 중심 행위자로 설정하고 있다. 그 결과 전환을 경제 운영 방식의 조정이나 기술적 대안의 도입으로 한정하는 경향과 한계를 보인다.
이러한 담론은 인간, 공동체, 자연과의 관계의 재구성에 미흡하거나 회피하고 있고 국가와 시장에 의존하며 경제(자본주의)를 넘은 삶에 대한 전망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특히 인간과 자연, 인간과 공동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한 상상력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체제 바깥의 삶의 방식에 대한 논의 역시 제한적이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생태전환은 기존 전환 담론을 포괄하면서도 그 너머를 지향하는 개념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참고 3> 지속 가능발전, 녹색전환, 녹색국가의 비교
구분 | 개념 | 차이 | 한계 |
지속 가능
발전 | 환경, 경제, 사회의 균형을 통해 현재와 미래 세대가 함께 번영하는 발전 모델 | 가치, 세계관, 문명 전환으로 보기 어렵고 발전 체제의 조정 | 발전 개념을 사용, ‘성장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함 |
녹색전환 | 재생에너지, 저탄소 기술 중심으로 에너지, 산업 구조를 전환하는 정책, 기술 중심의 변화 | 삶, 가치, 관계 등의 경제, 사회, 문화적 접근 없이 기술, 정책 중심의 부분적 전환 | 기술에 매몰되어 지금의 생산-배설적 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성장’이라는 구조적
모순을 외면할 가능성 |
녹색국가 | 국가가 제도, 정책, 재정 시스템을 녹색 중심으로 재편해 지속 가능성을 추진하는 국가 운영모델 | 국가, 제도 중심이어서 시민, 지역, 삶에 대한 접근 제한 | 국가와 행정 구조에 종속되어 정치체계, 권력구조, 지역분산 등 접근에 한계 |
3.
단계적 전환과 ‘지역’의 중요성
생태전환 담론과 관련한 논의에서 어떤 것이 더 넓은 개념인지, 우위에 있는지를 따지기보다 실현 가능성에 따라 단계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녹색전환은 기후위기에 대한 긴급한 기술적·산업적 대응이며, SDGs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행동의 틀이다. 녹색국가는 이러한 경험을 국가 시스템 차원에서 제도화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정리하면 <참고 4>와 같다.
<참고 4> 전환담론의 단계적 활용
단계 | 구분 | 역할 | 비고 |
1 | 녹색전환 | 당장의 기후위기에 대응
에너지, 산업, 기술적 대응 | |
2 | SDGs | 전환을 위한 행동계획의 수립
국제사회 합의와 공유에 의한 여러 단위의 실천 유도 | |
3 | 녹색국가 | SDGs의 실천에 따른 경험의 축적
국가시스템을 통한 전환의 기반 마련 | |
4 | 지역전환 | 개인적 삶과 지구적 공생의 연결고리 = ‘지역’
공동체, 자율, 상호부조, 수평적 관계의 기반 | |
5 | 생태전환 | 가치체계와 문명의 재설계
하나뿐인 지구의 권력이 없는 인류공동체 구축 |
이러한 단계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지역전환’이다. 생태전환은 ‘지역’을 중심으로 재편, 실천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완전한 전환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지역은 개인의 일상과 지구적 과제가 만나는 지점이며, 공동체와 자율, 상호부조가 작동할 수 있는 단위이다. 생태전환은 이 모든 단계를 포괄하는 최상위 개념으로서, 궁극적으로는 국가 중심 구조를 넘어 인류 공동체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문명 전환을 지향한다.
왜 지역이어야 할까. 첫째, 인간, 자연과의 관계는 공동체를 통해 연결되어 건강한 방식으로 유지되었고 공동체의 기본단위는 지역사회였다. 둘째, 지역 공동체는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최적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셋째, 현재의 위기는 자본주의에 의한 공동체의 해체에서 비롯되었고 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는 최적의 단위는 지역사회이다. 이러한 지역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두 가지 사상, 로컬리즘(Localism)과 생물지역주의(Bioregionalism)를 참고할 만 하다. 로컬리즘은 삶·경제·정치·문화의 중심을 국가나 글로벌 수준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두고, 그 지역의 사람·자원·생태·관계를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만들자는 사상·운동·사회 모델이고 생물지역주의는 정치·행정 경계가 아니라 토양, 물, 기후, 식생, 생태계 흐름에 따라 지역을 정의하고, 그 생태권역을 중심으로 삶·경제·문화·정치를 조직해야 한다는 사상·운동·정책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지역을 중심으로 생태전환을 해야 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지역은 전환의 현장이다. 지역은 에너지, 농업, 먹거리, 주거, 돌봄 등 위기를 실감하고 이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현장이다. 둘째, 지역마다 다른 해법을 만들 수 있다. 지역마다 자원의 양과 질, 생태적 서비스의 수준이 달라 가장 효율적인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셋째, 권력 분산은 지역에서부터 일어난다. 상호부조, 협력, 호혜가 작동하는 공간이고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이를 감성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넷째, 우연의 집적과 혁신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전문가에 의한 기획된 혁신이 아니라 우연의 집적을 통해 학습, 실험, 혁신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범위이다. 다섯째, 더 민주적이며 더 참여적이다. 지역에서의 의사결정은 글로벌, 국가 수준의 정책 결정에 비해 더 민주적이고 더 참여적이다. 여섯째, 회복력이 존재하고 수평적 확산이 가능하다. 실험과 실천의 부정적인 영향은 보정 가능한 범위 안에 있고 한 지역의 성공모델은 다른 지역으로 수평적 확산이 가능하다.
참고적으로 마을만들기 운동의 새로운 방향은 ‘지역’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며 정리했던 ‘지역의 미래’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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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비전 : 건강한 지역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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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지역의 모습
① 자유로운 개인이 다양한 삶을 영위한다.
② 개인 사이에 느슨하지만, 유연한 교류와 연대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③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속 가능한 삶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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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지역을 만들기 위한 전략
① 자본, 성장, 중앙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
② 주민 스스로 말하고 연대하고 행동하기
③ 다양한 수준에서 다양한 의제를 실천하고 이 경험과 사례를 축적하기
4.
생태전환을 위한 실천 과제
생태전환을 위해서는 생태적 문해력, 즉 생태적 상상력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는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생태적 지식을 함양하는 것을 넘어 이 세상의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적 자각이 일어나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기후나 환경 문제를 개별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문명 전체의 구조 속에서 이해하고 해법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지역을 중심으로 에너지, 먹거리, 돌봄, 노동 등 삶의 기본 조건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실천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시민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시민단체는 아울러 생태전환에 대한 명확한 비전 제시와 전환의 단계를 이행할 때 그 방향과 내용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시민단체는 생태전환의 직접적 실행자가 아니라,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연결자, 조정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지역 인력을 발굴·육성하고, 리빙랩 형태의 실험을 지원하며, 지역 간 경험을 공유하는 학습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원 또한 단순한 지원금이 아니라, 중앙과 지역, 기업과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장기적 동반자 구조 속에서 조성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생태전환은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역 생태계를 구축하는 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5.
생태전환은 ‘흙’으로부터
끝으로 생태적 문해력, 지역 중심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흙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서양에서 흙을 더러운 것(dirt)로 여겼지만 우리는 ‘대지’라 부르며 신성시해 왔다. 생태적 문해력의 부족은 이렇게 흙을 업신여기는 것에서 드러난다. “고령의 나무는 탄소를 흡수하지 않아 베고 어린나무로 대체해야 한다”라는 주장은 숲에서 흙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잣대로는 나무의 성장만 보이지만, 오래된 숲일수록 흙은 더 성숙해지고 유기물 함량이 높아져 탄소를 안정적으로 저장한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흙은 언제 어디서나 식물을 키워내 스스로를 건강하게 만들며 탄소를 흡수, 격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태적 문해력은 이러한 투시력을 장착한다.
석유문명은 흙을 대체가 가능한 물질로 보았고, 그 역할을 화학비료·농약·농기계로 대신하고 최근에는 스마트팜으로 그 역할을 완전히 지우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는 아직 식량문제의 완전한 해답에는 다가서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상당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기온의 상승은 식량 생산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반대로 토양을 다시 보면 해법이 보인다. 흙은 여전히 지구에서 가장 크고 안정적인 탄소 저장고이며, 산업화 이후 인류가 대기 중에 배출한 탄소의 상당 부분을 다시 흡수하고 저장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가 추진한 ‘4퍼밀(4‰) 이니셔티브’는 토양의 유기물 함량을 매년 0.4%만 높여도 기후위기 완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으며 인류의 식량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과학적 주장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문명은 흙 위에 세워져야 한다. 생태전환은 구호가 아니라 흙 위에 생명과 농사를 존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을을 재생하고, 도시와 농촌과의 순환과 생태망을 복원하는 구체적 실천에서 시작된다. 건강한 흙은 자연적으로 200년 이상이 되어야 복원된다. 지금 우리가 건강한 흙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다음 세대에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흙을 물질에서 생명으로, 대체 가능한 대상에서 문명의 기반으로 바라보는 생태문해력이 뒷받침될 때,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당당히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