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작은 도시의 전통시장에서 청년창업을 지원할 때 일이다. 원하는 사업에 맞추어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고 저렴한 임대료의 점포를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그 시장의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생겨 젊은 세대의 입주를 앞두고 있었고 지자체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주차장을 확장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한 청년이 돈가스 전문점을 창업하겠다고 신청했다. 제출한 계획을 보니 젊은 세대와 아이들을 겨냥해 치즈가 잔뜩 들어가 있거나 어르신들에게는 생소한 메뉴들이었다. 그 청년에게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소스를 얹은 얇고 큰 돈가스를 만들 수 없느냐 물으니 누가 그런 옛날 음식을 먹을까 반문했다. 그 청년에게 시장의 음식 장사에선 시장의 다른 상인이 소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했더니 그제야 내 말을 알아들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건 청년의 잘못이 아니다. 지역발전을 도모한다는 대부분 지원사업은 지역주민의 소비에 어둡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큰 도시에 사는 사람들, 큰 비용의 홍보비를 쏟아부어도 찾아올 보장이 없는 외지 사람들을 겨냥한다.
전북의 한 도시에서 도시재생과 관련한 일을 한 적이 있다. 사업지구와 가까운 곳에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곳이 있었고 한복대여점이 성행했다. 한복대여점의 체험용 한복은 20~30회 사용하면 헤지거나 뜯어져 한 달에 사들이는 옷이 수십 벌에 달했다. 그 옷은 서울의 한 시장에서 대량으로 만든 것이고 그곳 건물의 대부분은 이미 외지인이 소유해 비싼 임대료를 챙기고 있으니 한복대여점이 번 돈은 다시 지역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셈이었다. 그래서 그 지역 인근에서 작은 한복집을 하는 할머니들에게 체험용 한복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자세한 설명을 들은 할머니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안 할란다. 내가 40년 넘게 한복을 만들었는데 이 나이에 돈 벌자고 그런 옷을 만들진 못하겠다’ 체험용 한복은 전통한복과 달리 고무줄이 들어가 있는 국적 불명의 옷이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답을 들으며 그렇게 많은 관광객이 찾지만, 이 도시는 전통문화를 지키고 있는 걸까, 그 할머니도 지키려고 한 자존심은 어디로 갔을까, 그렇게 해서 돈이라도 많이 남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의 숫자를 세고 관광객이 쓴 돈이 얼마인지 추산하지만, 그 돈이 어떻게 바깥으로 빠져나가는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의 지역경제와 관련된 정책엔 두 가지가 없다. 지역주민의 소비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돈이다. 지역주민은 외부의 팔 물건을 생산하는 자원 혹은 노동자일 뿐이다. 그들도 필요한 것이 있고 소비하는데 여기엔 무관심이다. 그 허점을 거대 자본의 대형마트와 프랜차이즈가 노린다. 지자체는 재정자립도, 재정자주도와 함께 지역총생산(GRDP)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지표에는 자본의 역외유출이 고려되지 않는다. 한 산업의 가치사슬 중 부가가치가 높은 부문이 역외에 있거나 지역에 본사 없이 공장만 있는 경우 지역으로 들어온 돈은 다시 빠져나간다. 여기에 대형마트와 기업형 프랜차이즈가 이 역외유출을 거든다. 그런데 지자체는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온갖 세금을 면제해주며 공장과 대형마트를 유치하느라 바쁘다.
몇 년 전에 일본에서 열리는 지역개발과 관련한 토론회에서 시가현의 히가시오미시가 지역회계를 도입한 사례를 들었다. 인구 10만 명 정도의 이 도시는 지역 내에서 어느 정도의 부가가치가 생산되었고 어떻게 배분되어 얼마의 돈이 내부에 쓰였고 외부로 유출되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부를 매년 정리하고 있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지역경제 정책을 수립하는데 지역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돈을 줄이는 일을 중요한 경제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지역회계를 도입한 지자체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지난 1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국 시·군·구자치회 의장과의 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해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지역이 스스로 비교우위에 있는 성장동력을 발굴해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지역주민은 없었고 지역자립이나 순환경제라는 말도 없었다. 나는 대통령의 말대로 하지 않아 경쟁력을 가지지 못하는 지역은 도태시킬 것이라는 말로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