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청년들이 들어오고 있다. 귀농귀촌 통계에 따르면 2021년에 51만 5,434명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했는데 30대 이하의 청년이 45.8%를 차지하고 있다. 청년들의 귀농귀촌을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농림부의 후계농 지원사업, 행안부의 청년마을 지원사업, 중기부의 로컬크리에이터 지원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지방정부도 별도의 지원을 하고 있으며 지방소멸대응기금도 청년에 대한 지원사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하고 있는 농촌에 청년이 많아지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지원사업을 추진하기에 앞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청년지원사업의 자문을 위해 충남의 한 농촌을 방문한 적이 있다. 농협이 소유한 창고를 개조해 청년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유사무실과 작업장, 카페, 전시장, 숙소 등을 만드는 사업이었다. 이 공간의 기본계획을 만든 지역대학의 교수는 청년들이 여기서 농산물 패키지도 만들고 지역의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 그러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정말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이 사업의 목표는 그런 사람을 만드는 것일까,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청년들이 농촌에 올까, 별별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예전에 농사를 짓는 일은 돈이 되지 않았고 변변한 일자리도 없고 생활기반시설도 부족하니 청년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했다. 즉 살기 어려워 농촌을 떠났다. 그러면 최근 농촌에 청년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도시보다 농촌이 살기 좋아졌기 때문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2인 농가의 평균소득은 3천 9백만 원으로 2인 도시근로자 가구의 평균소득의 74%에 지나지 않고 농업 총수입은 3천 6백만 원이고 농업경영비는 2천 4백만 원이어서 농업 순소득은 1천 2백만 원밖에 되지 않으며 지가는 턱없이 올라 적정한 농업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큰돈을 투자하거나 빚을 얻어야 하고 인구 천 명당 일자리는 도시가 565개, 농촌이 686개로 농촌이 숫자로는 많지만, 농림어업과 건설제조업 일자리의 비중이 50%에 가까워 양질의 다양한 일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청년들이 농촌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일까. 물리적, 경제적인 관점으로 그 이유를 찾기 어렵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좋은 대학에 가기 어렵고 대학을 졸업해도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은 힘들며 취업을 하더라도 평생 일할 수 없고 평생 일해도 행복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의 거리응원에 참여해 한국에 매료된 옥스퍼드 대학생 다니엘 튜터는 대학을 졸업하고 이코노미스트에 취직해 한국 특파원을 자청했다. 기자의 눈으로 본 한국사회는 거리 응원전과 같이 신나고 역동적이지 않았다. 그가 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문학동네, 2013)」라는 책에서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경쟁이 가장 심한 나라라 꼬집고 있다. 청년들이 농촌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은 농촌이 더 살기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다. 심한 경쟁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많이 벌지 않아도 살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고 꼭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자기가 좋아하고 즐거운 일을 해볼 수 있는 느슨한 틈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농촌은 여전히 물리적, 경제적으로는 살기 좋은 곳이 아니지만, 사회적으로는 도시보다 살기 좋은 곳일 수 있다.
정부는 농촌으로 들어오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청년들이 사회적인 안정성 때문에 농촌에 들어오고 있다면 이러한 경제적인 지원과 함께 이를 강화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자칫 무분별한 청년지원사업이 농촌도 경쟁이 심한 곳으로, 많이 벌고 많이 써야 생활이 가능한 곳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손 내밀 데가 없는 곳으로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혁명을 만들어낼 것이라 하지만 동시에 노동의 종말을 걱정하는 시대이다. 노동이 없어지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즐겁고 행복한 일을 찾을 수 있는 농촌이 혁명과 종말이 교차하는 혼란과 전환의 시대에 청년들의 피난처이자 안식처가 되어야 할 것이다.